Be nice to everyone ;

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,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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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말남않

그 때의 기억

개빠 2021. 11. 4. 11:58

정말 짧은 순간이었는데, 행복해서 자꾸 생각나는 기억들이 있다.

1.
몇 년 전에, 버스 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가고 있었는데,
코너를 돌자마자 아주 가까이서 포메라니안을 마주쳤다.
1년도 안 된 것 같았고, 갈색 곰돌이 컷이었다. 견주님과 함께 산책 중이었던 것 같은데.. 너무 귀여웠다.

산책하는 강아지를 마주치면 강아지가 먼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상 가볍게 미소를 짓고 넘어가는데
그때는 그럴 시간도 없어서 슥 보고 그냥 갔다.
근데 그 강아지가.. 갑자기 가만히 앉아서 날 계속 쳐다봤다.
처음엔 착각인줄 알고 좀 더 가서야 뒤를 돌아봤는데, 정말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. 가만히 앉아서.
견주 님은 당황하며 가자고 재촉하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날 계속 쳐다봤다. 내가 점점 멀어지는데도.
너무 신기해서 나도 걸어가면서 자꾸 뒤돌아봤다.

그 애기는 뭐였을까... 나한테 할 말이 있었을까... 아니면 그 찰나에서도 내 옥시토신을 감지해서 기뻐서 쳐다본 걸까?

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친 애긴데.. 그 후로 한 번도 보지 못 했다. 마주칠 법도 한데...

내가 조금 더 일찍 나왔더라면, 시간이 많았다면 이 궁금증도 안 생겼겠지... 근데 아무렴 뭐 어때.. 날 쳐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각난다. 너무 귀여웠다.


2.
이건.. 아마도 5~8년 전이었다. 오래된 기억이다.
쉬는 날 오후 늦게 나갈 일이 있어서 짐을 좀 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
갑자기 뽀얗고 털이 40mm 정도 자란 말티즈가 날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를 엄청 흔들며 맞이해줬다.
당황스러웠다. 집 밖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이런 귀여운 강아지가 날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..
어쨌든 누가 잃어버린 강아지니깐 찾아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, 동시에 짐 때문에 한 손만 써야 되는 상황이어서 겨우겨우 강아지를 안았는데, 아래층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.
그래서 내려가 봤는데 날 보더니 웃으시면서 잘 따라오다가 갑자기 걔가 안 내려왔다고,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강아지를 건네받았다.

누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며 안심하고 나갔는데 생각할수록 이상했다.
현관문에서 인기척이 들리니까 기다린 건가? 정말 무해하다..... 너무 사랑스럽다.
이 기억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.

그냥.. 가끔 생각나서 행복해지는 기억들을 적어보았다.